🌈🐈💕✨🦄 유기묘 구조 후 펫로스 증후군에 걸린 사연

만남

2011년 장마가 끊이질 않던 여름밤. 잠시 비가 그쳐서 환기시키려 창문을 열었다. 창문너머 들리는 새끼 고양이 소리에 이끌려 밖에 나갔다가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 편의점에서 자갈치 한 봉지 사서 다시 돌아오던 길. 건물과 건물 사이 어두운 곳에서 다시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 발걸음을 멈췄다. 살면서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한참을 길바닥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그땐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혹시 과자로 유인하면 다가오지 않을까 싶어 자갈치 한 줌을 손에 쥐고 "나비야~"하며 몇 번을 불렀다. 그러자 갑자기 어두운 건물 사이에서 갑자기 목에 두른 갈기가 바짝 선 수사자 모양의 그림자가 한발 한발 서서히 나에게 다가왔다. 순간 “아... 이거 새끼가 아닌 것 같다. 나를 물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스치며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까 봐 살짝 마음 졸였는데, 가로등 불빛 사이로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귀여운 고양이가 어느새 쭈그려 앉아 있던 나의 다리 사이로 들어와 내 손에 담긴 자갈치를 먹겠다고 혀로 연신 손을 핥아댔다. 자갈치 하나를 잘게 부숴 입안에 넣어줬는데 살아보겠다고 송곳니로 오독오독 씹는 모습이 순간 귀여우면서도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 아이를 품에 안고 집에 들어왔다.

 

집에 오자마자 화장실에서 바로 씻기고, 감기라도 걸릴까봐 드라이어로 털 열심히 말린 후 편의점 다시 뛰어가서 빵, 참치캔, 오징어 등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걸 몇 개 집어왔다. 당시 우리 동네 편의점에서는 고양이사료를 판매하지 않았다. 그리고 너무 늦은 밤이라 근처 동물병원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고, 24시 동물병원은 너무 멀었다. 다행히 참치캔과 버터구이 오징어를 기가 막히게 잘 먹었다. 그리고 물 한 사발 따라준 걸 그 조그만 혀로 쳡쳡. 쳡쳡쳡. 쳡쳡쳡쳡. 아주 맛있게 먹더니... 깔고 자라고 방 한쪽에 고이 접어 깔아 둔 샤워타월 위에 쉬야를 하고는 침대 아래 공간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나는 고양이의 습성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이런 게 야생동물의 습성인 줄로만 알았고, 나 역시 다음날 출근을 해야만 해서 우리는 침대 위, 아래에서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은 채 일찍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다리 사이가 따뜻하다 못해 엄청 뜨거워서 잠에서 깼다. 살짝 고개를 들어 내 다리를 봤는데, 그 아이가 내 다리 사이에 똬리를 틀고 밤새 잠을 잤던 것 같다. 내가 몸을 일으키자 그 아이도 고개를 들어서 나를 바라보더니 마치 제 집인 양 갑자기 기지개를 켜면서 온몸을 쭉 펴면서 그대로 다시 누웠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사진을 찍다가... 문뜩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라며 스스로를 이상하게 생각하다가도, 이렇게 귀엽다면 같이 살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유기묘일 수도 있으니까 유기묘보호센터, 지역 동물보호센터, 다음과 네이버의 고양이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의 고양이 갤러리, 분실물센터 등등 수십여 개의 온라인 사이트와 커뮤니티에 닥치는 대로 게시물을 올려 유기묘를 보호 중이라고 사진과 내 연락처를 함께 알렸다. 그리고 내가 살던 동네와  옆 동네까지 곳곳을 걸어 다니며 전봇대와 벽에 붙은 전단지를 보았는데 유기묘를 찾는다는 글은 없었다. 

2주가 지나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작성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물에 댓글이 달려서 읽어봤는데, “이것도 인연인데 주인이 나타날 것 같지 않으면 그냥 키우세요.”라고 적혀있었다. 당시 유기동물을 신고해서 보호소에 가도 주인도 못 찾고, 입양희망자도 없으면 안락사를 시킨다는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쳤다.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라며 온갖 의구심을 안고서 불안하게 하루하루를 보낸 것이, 그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나는 집사가 되었다. 

 

같이 살아야 하니까 우선 이름을 지어줬다. 당시 러시아에 관심이 많고, 러시아인들과 막 교류를 시작하던 때라 불현듯 야옹스키 yaonski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그 길로 나는 그 아이를 동물병원에 데려가 우선 건강검진부터 받았다. 접수하는 일부터 난감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고양이의 이름을 물어보는데 "야옹스키요."라고 말하자, "네?"라고 다시 반문했고, 그래서 다시 "야. 옹. 스. 키. 요."라고 말하자, 간호사 선생님께서 잠시 아무 말씀도 안 하시더니 "아... 옹이... 옹이요..."라며 '옹이'라고 기재하셨다. 그 후로 본명보다 애칭인 옹이로 더 많이 불렸다. 건강검진 결과 딱히 큰 문제는 없어 보였고, 몇 가지 예방 접종을 받았다. 성별은 암컷이었고, 나이는 5세 정도로 추정되었으며, 체중을 쟀는데 2.7kg이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옹이가 신체 사이즈에 비해 아주 오래 굶었던 것 같다고 걱정을 하셔서 영양이 듬뿍 담긴 사료도 구입해서 돌아왔다. 우리의 정식 동거를 기념하여 케이크도 구입해 생일 세리머니도 해줬다. 

 

 

행복했던 시간들 

옹이는 2011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서 처음 만나 서울 이태원, 경기도 평택시 용이동, 서울 노원구 중계동까지 나와 함께 이사를 다니며 거처를 옮기는 동안 내내 잘 적응하면서 함께 생활했다. 늘 좋은 것만 먹이고, 화장실도 국내에 들어오지 않던 최고급 타워팰리스급 고양이 화장실을 직구로 처음 수입해서 쓸 정도였다. 털을 빗겨주는 빗들도 최고급 유럽산 제품만 직구로 구입해 사용했다. 츄르가 유행하기 전부터 옹이는 츄르를 먹고 있었을 정도였다. 가슴으로 낳아서 지갑으로 키웠다. 동물이 아니라 정말 내 딸처럼 사랑했고, 나는 매일 밤 옹이를 가슴에 안고 가수 노사연의 '만남'이라는 노래를 불러주며 애정을 표현했다. 

 

옹이는 다 좋았는데 무슨 심술인지 2주에 한 번 꼴로 이불에 오줌을 싸서 밤마다 세탁기를 돌리는 일이 많았다. 옹이 때문에 구스 이불을 몇 번이나 새로 구입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불에 오줌을 싸서 세탁하고, 새 이불을 꺼내면 또 오줌을 싸고, 또 세탁하고 새 이불을 꺼내면 또 오줌을 싸는 아주 못된 행동을 하루에 연타로 저지르는 날도 있었다. 추운 겨울에 이런 날이 걸리면 모든 이불을 세탁하느라 덮고 잘 이불도 없어서 나는 패딩을 입고 자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당시 매일 4시간만 자면서 하루 중 16시간 이상을 데스크에 앉아서 일만 하던 내가 온전히 휴식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오직 수면시간뿐이었다. 그래서 결국 나의 침소를 지키기 위해서 매일 밤 옹이와 분리된 생활을 했다. 옹이가 격리된 느낌을 받지 않도록 아파트의 큰방은 옹이에게 주고, 작은 방에 꽉 차도록 킹사이즈 침대를 간신히 넣었다. 그렇게 작은방은 옹이가 절대 들어올 수 없는 내 침실이 되었다. 옹이가 매일밤 발톱을 세워 닫힌 방문을 긁고 열어달라고 냐옹 냐옹 울 때마다 마음이 약해졌는데, 제발 잠만큼은 온전히 자고 싶어서 마음을 굳게 먹고 옹이를 무시해야만 하는 일이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요즘도 밤마다 침대에 누우면 옹이의 방문 긁는 소리와 야옹하고 울던 목소리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한 번은 옹이의 사진들과 옹이와의 생활을 네이버블로그에 공개를 했었다. 그때 많은 분들께서 내 블로그를 이웃추가해 줬고, 많은 댓글을 남겨줬다. 그때 친분을 쌓았던 한 블로그 이웃 분과는 몇 번의 소소한 만남도 가졌었고, 나중에 캐나다로 떠날 때 배웅도 했었다. 그리고 또 가깝게 지내던 한 블로그 이웃 분께서는 이따금 옹이에게 선물한다며 각종 고양이 간식과 용품들을 택배로 잔뜩 보내 주고는 했었다. 정말 감사했다. 

 

 

위기 

옹이는 2015년 2월 초 식사량 감소, 구토 및 활동량 저하 등의 이상증상이 발생하여 집 근처 고양이 전문 동물병원에서 두 번의 종합검사 결과 고양이 신부전증 확진을 받았고, 콩팥 2개 중 1개는 이미 제 기능을 상실했으며 남은 한 개의 콩팥도 상태가 나빠지는 중이라 전체 신장 기능의 20% 정도만 간신히 유지되는 상황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2015년 당시 일정 기간 입원했다가 퇴원하여 집에서 한 달 정도 매일 약을 먹인다고 전쟁을 치르고, 수분 공급을 위하여 나비주사를 등 부분 살가죽에 놓아 주사기를 쥐어짜 억지로 물주머니를 만드는 방법으로 관리했다. 또한 renal 관리 전용 사료만 먹이면서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내 사업이 2011년부터 잘 되었고, 몇 번의 위기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괜찮았는데, 가장 황금기는 2014년~2018년이었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당시 가장 바쁜 시기였고 해외출장도 잦아서 매번 옹이를 타인에게 맡기는 일이 아무래도 큰 피로감을 주었던 것 같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럽게도 옹이는 건강을 되찾는다. 옹이가 아프자 내 가슴이 소 한 마리가 들어앉은 것처럼 무겁고 먹먹한 느낌이었는데, 옹이가 건강을 되찾은 이후로는 가장 큰 시름을 덜게 되어 매일 웃음꽃이 피었다. 그 후로 옹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애를 썼고, 최대한 외부 일정을 자제하면서 재택근무로만 모든 업무를 처리했다. 덕분인지 2016년, 2017년 두 해는 옹이가 정말 괜찮았다. 

 

 

 

이별 

그런데 결국 올 것이 왔다. 옹이는 2018년 8월경부터 조금씩 활동량이 떨어지고 자는 시간이 길어지더니 급기야 9월 말부턴 식사량과 급수량도 평소와 달리 매우 저조한 증상을 보였다. ​즉시 고양이 전문 동물병원에 입원시켜 각종 검사결과 증상이 매우 나빠진 것을 확인하게 되었고,  수치 조절에 들어가 조금씩 증세가 호전되고 점차 생기가 도는 모습을 보였으나, 이미 손상된 신장으로 인하여 아무래도 장기간 입원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것보다 집에서 관리하며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는 원장 선생님의 권유로 퇴원시켰다.

 

그렇게 퇴원 후 일주일 정도를 24시간 내내 옹이와 붙어 있으면서 수액과 식사 등을 챙겼다. 하루는 옹이가 계속 티브이다이 아래나 소파 아래 공간에 머리를 밀어 넣고 대자로 엎드려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옹이를 꺼내서 편히 쉴 수 있도록 소파에 다시 올려놓고는 했었다. 그런데 내가 잠시 한눈을 팔면 옹이는 다시 구석이나 빈틈에 얼굴을 밀어넣고 엎드려 있었다. 그땐 이게 무얼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잠이 안 오고 느낌이 너무 안 좋았다. 불안한 마음에 밤새도록 옹이를 안고서 말없이 바라봤다. 순간 옹이의 마지막 한숨과 함께 마치 영혼이라도 빠져나가듯이 옹이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2018년 11월 3일 새벽. 결국 옹이는 내 품 안에서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8년여의 세월을 함께 동고동락했던 친구이자 딸 같은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다. 장례는 옹이가 떠난 당일 아침에 경기도 이천시에 소재한 반려동물 전문 장례업체를 통해 절차와 격식을 갖춰 충분한 시간을 갖고서 추모하였고, 옹이의 사체는 화장하여 분골은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나중에 좋은 곳에 따로 수목장을 해주고 싶었다. 

 

 

내가 세심하게 돌보지 못한 불찰로 떠나보냈다는 자책이 커서 한동안 많이 힘들었다.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쉴 틈 없이 온정을 쏟아부어야 함을 처절히 깨닫는 사이에 벌써 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매년 이맘때면 잊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잔상과 그리움으로 가슴이 아르르 저며 온다. 

 

11월 3일. 오늘은 옹이의 기일이다. 옹이가 떠난 지 어느덧 6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옹이가 너무 그립다. 항상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자주 든다. 매년 11월 3일이 되면 홀로 복음 하면서 옹이의 평안을 기린다. 

 

옹아, 마지막까지 고통받았을 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 이미 환생했겠지만, 다음 생엔 고양이가 아닌 귀한 사람으로 태어나 귀하게 살길 바란다. 그리고 때가 되면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란다.